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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발행인컬럼] 티벳 전통 사운드 테라피
    ▲ 히말라야 영봉과 티벳 “The power of music to integrate is quite fundamental. It is the profoundest non-chemical medication.” - Dr. Oliver Sacks, THE AWAKENINGS 순결한 영혼의 땅 티벳(Tibet)... 티벳 사람들은 수 천 년 장구한 세월 동안 히말라야 설산 영봉 아래 그들만의 지혜를 간직한 채 살아 왔다. 지리적 고립 탓이었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티벳 땅은 지상에서 가장 순수하고 건강한 영혼을 지닌 곳으로 불린다. 인류를 위한 ‘오래된 미래’를 간직한 곳으로 일컬어지기도 한다. 영혼이 맑은 티벳 사람들은 육체가 건강하다. 그리고 삶에 대한 만족도가 어느 문명화된 선진국가보다 높다. 티벳 사람들이 오랫동안 간직하고 신앙해 온 고대의 지혜 중 하나는 바로 ‘소리’(sound)이다. 각종 금속을 다양한 크기의 그릇 모양으로 만들고 그릇의 가장자리를 두툼한 막대로 문지르거나 두드리며 내는 진동 소리. 이른바 티벳 명상 주발(Tibetan Singing Bowl)이 내는 낭랑하면서도 맑고 고운 진동 소리는 티벳인의 건강한 육체와 영혼을 지켜온 핵심 비결 중 하나로 통한다. 명상 주발이 빚어내는 신비의 소리 ▲ 다양한 형태의 딩샤 현지어로 딩샤(Ting-Sha)라 불리는 이 주발(bowl)을 티벳 사람들은 오랜 옛날부터 영력을 지닌 소리 도구로 활용해 왔다. 불교가 전래된 이후에는 수도승들의 명상과 수행을 돕는 보조 수행 도구로 이용돼 왔고, 종교 혹은 제사 의식이나 전통 음악 연주용으로 이용되어 왔다. 옛날 일부 지역에서는 식기로 이용되기도 했다. 명칭도 다양하다. 명상 차크라 주발(meditation chakra bowl), 힐링 명상 주발, 히말라야 명상 주발 등으로 불린다. 티베트의 옛 문헌에 의하면 태양계의 태양(금), 달(은), 화성(철), 금성(동) 등 태양계의 7개 행성을 나타내는 성스러운 7가지 금속으로 만들었다고 기술되어 있으며, 전설에 따르면 히말라야 산 정상에 떨어진 운석에 들어 있는 철과 그밖의 금속들로 만들었다고도 한다. 주발의 가장 대표적인 용도는 역시 소리를 통한 치유(sound treatment or therapy)에 있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이 주발을 전인(holistic) 치유를 위한 사운드 마사지(sound massage) 도구로 칭하기도 한다. 티벳 사람들은 이 주발의 진동 소리가 마음을 안정시키고, 잡념을 떨치게 하며, 원기를 충전시켜 준다고 믿는다. 이 주발의 소리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순수한 삶의 에너지를 경험하고, 탐욕, 분노, 폭력성, 고립감 같은 부정적 감정들이 완화되는 효과를 거둔 것으로 알려져 왔다. 티벳과 문명사회 간의 접촉이 늘어나면서 이 주발이 문명 세계의 큰 관심거리로 등장했다. 도시의 명상센터, 일반 가정, 대체의학병원, 요가센터, 마사지테라피 센터에서 필수 소품으로 인기를 모으고 있다. 이 주발의 소리는 인간 뇌의 활동을 촉진시키고, 신경계통을 진정시키며, 공기나 물의 정화에도 도움을 준다는 실험 결과들이 잇따라 나오고 있다. 주발의 소리에 담긴 신비의 근원은 과연 무엇일까? ▲ 명상주발을 연주하는 승려 옴마니밧메훔 티벳 불교에서 수행자들은 주문 암송(mantra 혹은 chant)을 할 때 ‘옴마니밧메훔~’(OM MANI PADME HUM)을 반복한다. 옴(aum 혹은 om)은 고대 인도 철학에서 개벽의 소리로 통한다. 태초에 ‘옴’이라는 생명의 소리와 진동이 있었고 거기서 만물이 생겨났다. ‘훔(hum)’은 생명의 결실을 의미한다. 모든 생명을 머금고 있으며 모든 생명이 성숙하여 하나가 되는 생명의 근원의 소리이다. 불교에서는 온갖 고난을 뛰어 넘어 궁극적으로 도달한 깨달음의 조화 세계를 나타내는 소리가 바로 훔이며, 광명의 바다, 부처의 마음, 생명의 마음이다. 만물이 생장하여 결실을 맺고 사멸하는 가운데 우주의 본심을 깨닫고 건강한 광명의 세계에 도달할 수 있기를 염원하는 간절함이 이들의 주문 속에 들어 있다. 티벳은 고대로부터 사상적으로 인도의 영향을 받았고, 또 북인도에서 탄생한 불교 사상을 인도나 중국을 통해 받아들였다. 물론 티벳에는 그 이전에 뵌뽀(Bon-pa)교라 불리는 토템 신앙이 있었다. 티벳은 비록 불교와 같은 외래 문화의 침입을 받긴 했으나 민간을 중심으로 한 전래의 토속 신앙을 효율적으로 혼합시키거나 존속시켜 왔다. 어떤 경유로든 태초의 소리, 생명 개시의 소리인 ‘옴~’과 깨달음의 소리인 ‘훔’은 티벳 사람들에게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것으로 존재해 왔다. ‘옴~’은 엄밀한 의미에서 진동(vibration)에 가깝다. 바람이 공기를 가르고 움직이면 소리가 만들어진다. 인도 철학에서 말하는 우주의 시작 원리와 같다. 티벳 사람들은 인도인들과 마찬가지로 우주의 근원이 5가지 원소(5원소)에 있다는 유물론적 우주관을 오랫동안 지녀 왔다. 이들의 관점에서 보면 인간은 작은 우주, 즉 소우주(microcosm)이다. 그렇다면 인간의 근원도 5원소이며, 그 생명의 시작은 당연히 우주의 진동 소리와 똑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밖에 없다. 결국 ‘옴~’은 대우주의 시원(始原)의 소리이면서 동시에 인간의 생명의 소리, 생명의 파동(진동)과 동일한 것이다. 우주에는 생명의 파동이 존재하며, 인체의 기능도 정상적인 파동이 존재할 때 비로소 건강하게 작동할 것이다. 티벳 명상 주발은 심신이 손상된 인간에게 우주의 시원의 파동을 전달함으로써 건강을 회복케 하는 신비의 힘을 담은 도구인 셈이다. 주발을 막대로 원을 그리며 문지르거나 두들기면 신비로운 공명과 파동을 느낄 수 있다. 이를 통해 몸과 마음의 밸런스를 유지하며 흐트러진 에너지를 모으는 것이다. 깊고 천천히 다가오는 신묘한 울림은 우주의 에너지 파동 그 자체이다. 맑고 깊은 진동음은 치유의 효과도 가지며, 의식을 각성시켜 사람과 우주가 하나가 되게 한다. 의식이 각성된 상태에서는 호흡도 우주와 공명하게 된다. 샤머니즘인가 과학인가 인도출신의 하버드대 의학박사이며, 대체의학의 황제라 불리는 디팍 초프라(Deepak Chopra)는 자신의 저서 <양자치료법>(Quantum Healing)에서 홀리스틱 사운드(Mantra 같은 성스러운 소리)인 훔(Hum)과 같은 소리가 인간의 질병을 치료하는 데 탁월한 효과를 발휘한다고 언급했다. 쵸프라는 이렇게 말한다. “‘훔’이라는 소리는 병 치유에 탁월한 효과를 발휘한다. 인간 몸속의 생명을 통일적으로 치유하는 소리인‘훔’이라는 사운드는 인체의 모든 세포를 동시에 진동하게 한다. 영국의 한 과학자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시험관에 암세포를 넣어 ‘훔’ 소리를 쏘아준 결과 암세포는 진동 후에 터져 버렸고, 인체의 보통 세포를 시험관에 넣고 ‘훔’소리를 쏘아 주었더니 더욱 더 건강하게 잘 자랐다.’” 티벳 사람들이 주발의 소리를 통해 명상을 하고 마음을 수양하는 것은 치유를 위한 행위이자 깨달음으로 가는 방편이다. 이들이 외우는 주문(呪文)은 오히려 현대 과학이 규명하고자 했던 파동의 원리와 그 효능을 이미 담고 있는 셈이다. 그 주문과 소리 안에서 발생하는 힘은 생명체에 질서를 부여하고 조율하는 종합적 권능을 지니고 있으며, 이는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훌륭한 영적 처방 약으로 탈바꿈할 수 있다. 주문(呪文) 속에 내장된 금선(琴線)을 울리기만 하면 파동의 혁명이 일어난다. 샤머니즘은 종종 현대 과학의 우매함을 드러내 준다. 육체와 마음을 이원론적으로 이해하려는 현대 과학이 갖는 근본적인 한계일 것이다. 최근에는 서구 과학계의 접근 방법에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특히 파동이나 사운드(sound)에 대해 지대한 관심과 연구를 기울이고 있다. 파동경영, 파동건강, 파동음악 같은 개념들이 유행병처럼 번지고, 소리가 인체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의학적인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립대학(UCLA)이나 스탠포드(Stanford)대학에서는 소리가 인체의 질병치료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많은 연구를 하고 있다. 인체는 파동체 소리는 인체에 다양한 영향을 미친다. 소리가 80 데시벨이 넘으면 소음이고, 100데시벨이 넘으면 인체에 물리적인 영향을 준다. 그래서 공항 주변에 사는 사람들은 항상 120 데시벨에서 140 데시벨의 소음에 시달리고 있는데, 임산부인 경우 미숙아를 출산하거나 유산을 할 확률이 무척 높다. 또 난청, 정서불안, 우울증을 유발할 수도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 나치는 음향병기라는 인명살상용 무기를 연구하고 실험하기까지 했다. 소리의 파장은 에너지 형태를 띠고 있다. 그래서 돌이나 다리가 일정한 진동으로 인해 무너지기도 하고, 소리의 종류에 따라 뇌와 혈액순환, 신진대사, 내장활동 등이 달라지기도 한다. 소리와 진동은 의학적으로 질병 치료에 점차 많이 활용되고 있다. 현대 생물학이나 소리공학에 따르면 인간 생체의 세포는 소리의 공명기(共鳴器)라고 한다. 우리 온 몸의 세포가 가장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것이 소리라는 것이다. 소리의 진동 중에서도 어떤 것은 인체에 가해질 때 조직과 세포 사이에 미묘한 메시지로 작용한다. 그 결과 혈액의 순환을 원활하게 하고, 신진대사, 신경 전송 시스템, 내분비선의 움직임을 활발히 하는데 도움을 준다. 미국의 심리학자 아서 재놉(Arthur Janov)은 ‘고함요법’ (Primal Therapy)을 만들어 스님들이 고성 염불을 하듯 소리를 크게 지속적으로 지를 경우 혈압이나 혈당이 정상치로 되돌아 온다고 밝혔다. 이것은 단순히 소리를 통해 스트레스가 해소됐기 때문이 아니라 소리가 체내에서 불완전한 유해 물질을 순화시켰기 때문인 것으로 설명되고 있다. 약물을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만트라(주문) 수행을 시켰더니 83%에 이르는 사람들이 약물 사용을 포기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육체는 깨달음의 도구 고대 티벳인들은 단순히 인체 공명 효과와 이를 통한 건강관리를 위해 주발의 진동과 소리를 찾아 냈을까. 아니다. 거기에는 더 큰 목표가 있다. 바로 깨달음이다. 고대 인도나 티벳 철학에서는 육신의 구조를 기(氣)와 생명력(프라나 또는 정수)으로 이루어진 정신물리학적 체계로 간주했다. 깨달음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우주 에너지와의 합일이 필요했고, 또 이를 위해서는 기(氣)와 기의 통로(나디 혹은 Chakra)를 정화하는 것이 선결 요건이었다. 소리, 즉 진동이 7가지 차크라에 대응하는 활성음의 형태로 조율이 되어 인체에 다가올 때, 그 파동음들은 심신의 안정과 의식의 각성을 유발함으로써 궁극적인 깨달음에 이르게 하는 것이다. 육체와 정신의 합일. 유물론에서 시작하여 변증법적인 발전이 이뤄지는 논리 구조. 현대의 그 어떤 사고체계보다 치밀하고 지혜가 번뜩인다. 이같은 깨달음에 이르는 과정에서 육체는 건강해 질 수밖에 없다. 티벳 사람들의 오랜 영적 지혜는 오늘날 티벳 의학의 명성을 최고의 반열에 올려 놓았다. [필자: 송하영(웰니스투데이 발행인)] (* 본 컬럼은 웰니스투데이의 전신인 월간스파라이프에 소개(2008년)되었던 내용이며, 일부 독자들의 요청에 따라 다시 게재해 드리는 것입니다.) < 저작권자 © 웰니스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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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1-01
  • [발행인컬럼] 코로나 사태 속 웰니스 소비의 약진과 시사점
    COVID-19의 공세로 1년이 넘게 속수무책 상태에 있던 세계가 일군의 백신들을 손에 쥐면서 어느새 국면 전환과 회복(recovery)을 말하기 시작했다. 새로운 변이 바이러스들의 공세가 어떤 결과를 가져올 지 아직은 속단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IMF는 일단 올해 세계경제가 6% 정도 성장을 기록할 것이라고 말하고, 내년에는 산업 위축의 여파 속에 4.4%를 기록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비관보다는 낙관의 여지를 강조하고 있다. 경제 환경의 불확실성 속에서 소비자들의 관심은 심신 건강에 더 집중되고 있다. 덕분에, 행복한 삶의 환경과 건강을 추구하는 웰니스(wellness) 산업이 소리 없이 약진하고 있다. 최근 맥킨지(McKinsey)가 6개국(브라질, 중국, 독일, 일본, 영국, 미국) 소비자 7천 5백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응답자의 79%가 자신의 삶에서 웰니스가 중요한 주제라고 답했고, 그 중 42%는 웰니스에 대한 지향을 최우선(top priority) 순위에 두고 있다고 밝혔다. 웰니스에 대한 관심과 산업적 성장은 지난 몇 해 동안 꾸준한 상승세를 보여 왔다. 팬데믹으로 인해 이 추세가 더 확연해지고 강화되고 있는 것이다. 맥킨지 보고서는 향후 수 개월 혹은 수 년 동안 6가지 큰 추세가 시장을 지배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 청정 & 천연 제품의 수요 증가 (화장품/식품) ▲ 개인화(personalized) 수요의 증대 ▲ 디지털 채널로의 전환 ▲ 인플루언서의 영향력 (상품추천...특히, 브라질과 중국) ▲ 제품보다 서비스 ▲ 산업의 전후방 융복합과 영역 확장 등이 큰 흐름의 골자다. 맥킨지는 소비자들이 당장 지출을 늘려갈 범주로 ▲ 기억/뇌건강 보조제 ▲ 항노화 제품 ▲ 용모개선 제품 ▲ 비침습적 미용 시술 ▲ 건강보조식품 ▲ 명상과 마음챙김 관련 활동 등을 지목했다. 코로나 환경 속에서 경제 활동을 영위하는 사람들, 특히 산업의 활동 주체들은 행동의 불편함에 못지않게 사고의 답답함을 호소하고 있다. 현 상황과 코로나 이후 환경에 대한 그림이 잘 그려지지 않기 때문이다. 뉴노멀(new normal)은 단순한 과거로의 복귀를 의미하지 않고 새로운 세상이 열리고 있다는 것을, 또 그것이 일상으로 자리를 잡는다는 것을 표현하는 말이다. 그 정체를 파악하는 일은 유익해 보인다. 팬데믹은 4차 산업혁명에 대한 담론이 확산되는 중에 불쑥 찾아 왔다. 산업 환경과 경제 활동의 패러다임 변화에 적응하기도 전에 다른 장애물이 생겨난 것이다, 하지만 세상의 변화를 심도 있게 성찰해 볼 기회일 수 있다. 맥킨지가 관찰한 면면에 ‘왜’ 혹은 ‘어떻게’ 같은 의문사를 달아 사고의 경계를 넓혀보자. 4차 산업혁명에서 말하는 디지털, 퍼스널 같은 화두들과 적극적으로 연계시켜 보자. 발빠른 기업들은 발상의 전환을 통해, 기존 비즈니스 영역의 경계 확장과 가치사슬의 융복합을 통해 시장의 스타로 떠오르고 있다. Peloton사의 홈 피트니스 기기나 Mirror사의 스마트 미러 솔루션 등이 좋은 예다. 위기를 기회로 활용하는 순발력과 추진력이 눈에 띈다. 웰니스는 인류 역사와 함께 해 온 건강한 삶에 대한 욕망의 압축적 표현이자 그 구현 방식이다. 지금은 그것이 상품화가 되고 거대한 산업으로 자리 잡고 있다. 코로나 시대는 발상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사고의 유연성을 강화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위축과 방어 보다는 창의와 혁신, 새로운 도전을 일상과 경제 활동에 접목해 보면 좋을 것 같다. 웰니스 산업의 약진 현상도 이러한 관점에서 더 면밀히 관찰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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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컬럼
    2021-06-07
  • [발행인컬럼] 스파, Pampering인가 Healing인가?
    스파 창업에 관한 문의가 부쩍 늘었다. 예상해 오던 일이지만 글로벌 경제와 산업의 흐름을 감안하면 오히려 뒤늦은 감이 있다. 지금이라도 우물 안 경제, 우물 안 산업 구조에서 벗어나 경쟁력 있는 산업과 서비스 패턴을 만들어 내는 일은 중요하다. 문의 상담을 할 때마다 느끼는 것이 있다. 바로 스파의 개념에 대한 혼란이다. 스파가 뭔지를 모른 채 막연하게 껍데기만 알고 있는 사람들이 대다수다. 여전히 스파를 ‘욕조’ 정도로 이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조금 식견이 있다는 사람들도 ‘욕조’에 ‘마사지’를 더하는 정도다. 답답한 노릇이다. 일부 교육 기관에서 스파에 관해 강의하는 사람들도 비슷한 혼란 속에 있는 것 같다. 숨이 막힌다. 학생들은 도대체 뭘 배울까? 또 적지 않은 자본을 투입해 ‘스파’ 사업을 준비하는 사람들은 어떤 상품을 어떻게 준비할까? 하나같이 정체불명의 공부를, 또 사업을 한다고 말한다. 스파란 환경, 목표, 수단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하면 조금 명확하게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환경이란 시공의 환경을 말한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와 장소다. 기계화와 인간 소외, 문명과 풍요가 낳은 정신과 영혼의 쇠락, 도시의 각종 공해와 질병, 근대 과학의 오만 등이 우리 삶의 환경이다. 스파의 목표는 이러한 환경 속에서 인간의 근원적 욕구를 충족시켜 주는 것이다. 근원적 욕구란 건강하고 행복한 삶으로의 회귀일 것이다. 19세기 자본주의의 억압 구도가 극에 달했을 때 인간은 본능적으로 억압에 항거하고 반동했다. 그래서 '복지'(welfare) 개념이 자본주의 선진국들의 정책 수단으로 동원되기 시작했다. 지금의 시대 환경 역시 세계인들이 웰니스(wellness)를 갈구할 만큼 억압적이다. 개인 수준에서 웰니스의 도달 수단은 다양하다. 욕조일 수도, 마사지일 수도, 정치나 철학일 수도, 음식일 수도, 명상일 수도 있다. 그러나 어느 하나가 전체를 대신할 수는 없다. 이 점에서 스파는 매우 넓은 컨셉이다. 수단과 목적, 환경이라는 요소를 고루 생각하지 않고서는 배움이든, 산업이든 자기 완결성을 갖출 수 없다. 자기 완결성은 그 자체가 유기적인 생존력이요 경쟁력 요소이기도 하다. 스파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배움도 사업도 실패할 수밖에 없다. 오로지 주변만 맴돌게 될 뿐이다.스파에 대한 보다 깊은 이해를 위해서는 사유의 단계를 더 추가할 필요가 있다. 근원적 욕구의 충족이나 행복한 삶으로의 복귀라는 목적과 관련된 부분이다. 기존 스파 센터에서 제공하는 서비스 메뉴를 보면 팸퍼링(pampering)이라는 말이 자주 등장한다. 일부에서는 힐링(healing)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이 둘은 무엇일까? 팸퍼링은 사전 그대로 해석할 때 ‘응석부린다’는 뜻이다. 스트레스에 찌든 고객들이 마음껏 응석을 부리도록 서비스를 제공해 준다는 것이다. 위안이나 위락으로 번역되기도 한다. 힐링은 보다 적극적이다. 몸과 마음의 상처를 어루만져주고 치유해 준다는 것이다. 응석 받아주기와 치유. 둘은 궁극적으로 하나의 꼭지 점으로 수렴하는 유사한 과정 같지만 차원이 다른 개념이다. 힐링은 복잡하고 까다로운 과정을 거치는 것이기는 하지만 스파의 존재이유 혹은 목적으로 표방해도 손색이 없다. 그러나 팸퍼링은 미완(未完)의 컨셉이다. 힐링을 개혁이나 혁명에 비유한다면 팸퍼링은 미봉책 혹은 회유책이라 할 수 있다. 흔히 어른들은 아이의 응석을 마냥 받아주기만 하면 버릇이 나빠진다고 꾸짖는다. 사람의 신체와 정신도 마찬가지다. 응석이란 어느 정도 받아주는 것은 단기적으로 유익할 수 있으나 장기적으로는 치료의 계기로 잃게 하고 병을 악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가능성이 있다. 잘못된 생활 습관, 식습관, 심신 상태를 그대로 둔 채 입욕이나 마사지 등으로 일시적인 응석만 받아주는 것이 스파의 요체는 아닌 것이다. 일본의 문명사상가인 모리오카 마사히로(森岡正博)가 간파한 현대 자본주의 산업사회의 이른바 무통문명(無痛文明)의 악몽은 팸퍼링과 힐링의 정체성을 극명하게 대비시키고 있다. 통증을 동반하는 진정한 치유를 회피한 채 무통이 전제된 신체의 쾌락과 욕망해소만을 희구하는 데서 비롯되는 파괴적인 문명 트렌드. 이는 죽음의 길로 묘사되기도 한다. 응석과 무통만이 모두는 아닌 것이다. 생명의 소중함을 인지하고 기쁨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무통의 상품이 거래되는 메커니즘에서 벗어나는 용기와 혜안, 자연의 질서 속에서 스스로 치유의 길을 개척해 나가는 지혜와 성숙함이 요구된다고 했다. 스파는 이러한 지혜와 성숙함에 이르는 이정표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금년 초 미국 스파업계의 유력 매체인 스파파인더와 뉴욕타임스 간에 벌어졌던 에피소드가 생각난다. 스파를 이용하는 최근 고객들의 가장 큰 목적이 무엇인가에 관한 이해와 오해의 공방이었다. 최근 메디컬 스파가 급성장하면서 단순한 위락보다는 치유의 의미가 부각되고 있는 현상을 둘러싼 논란이었다. 일단 팸퍼링을 우선적으로 강조한 스파파인더 측의 승리처럼 보였다. 뉴욕타임스에서는 대응 논평을 내지 않았다. 하지만 알고 보면 승자도 패자도 없는 줄다리기 신경전이었다. 승부를 판정할 만큼 충분히 각자의 입장을 개진하거나 논의한 바가 없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스파 선진국인 미국에서도 스파 개념에 대한 공감대가 아직 부족하며 껍데기 차원의 논의만 무성하다는 점이다. 그 때문에 산업의 외형적 변화 속도만 더욱 빨라지고 있다. 목적지가 여기도 아닌 것 같고, 저기도 아닌 것 같다. 시행착오만 반복되고 있을 뿐이다. 스파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는 것은 사람들의 욕망을 제대로 파악하고 적절한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필수적인 일이다. 시장에서 수요(demand)의 실체를 파악하는 것은 상품 공급자의 기본 상식이다. 수요 예측을 잘못한 공급자는 망할 수밖에 없다. 팸퍼링이라는 말에 내포되어 있는 독소적인 측면은 소비자 입장에서도 한 번 쯤 생각해 보아야 할 부분이다. 막연히 입욕이라는 것이, 혹은 각종 마사지들은 진정으로 본인의 몸과 마음이 원하고 있는 것이 아닐 수 있기 때문이다. 스파 센터들이 구호삼아 외치는 바디, 마인드, 스피릿의 균형과 회복이 과연 어떤 의미를 담고 잇는 것인지, 또 서비스 제공자 자신들은 그 의미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발행인 Ha Y. Song의 스파컬럼] - Reprint from SpaLife (2010)
    • 오피니언 Opinion
    • 컬럼
    2021-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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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발행인컬럼] 디지털 위험사회의 디톡스와 웰니스
    최근 미국을 비롯한 구미의 유통 및 서비스 산업계에 새로운 바람이 불고 있다. 일명 디지털 디톡스(digital detox)로 불리는 탈(脫)정보기기 운동 때문이다. 삶의 편의를 위해 인간이 주도한 기술이 오히려 인간의 본성적 삶을 해친다는 각성과 저항은 인류 문명사 속에서 늘 존재했었다. 근세 이후 산업혁명과 대량생산 시대를 거치면서 소외되고 짓밟힌 휴머니즘의 거센 저항은 도처에서 잔혹스런 사태들을 연출했었다. 21세기 정보기술의 발달도 유사한 저항에 부딪히고 있다. 사람들은 정보기기의 편리성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감각적 삶을 옥죄고 마비시키는 암울한 환경에 점차 불안감을 느끼고 있다. 디지털 중독사회, 디지털 위험사회, 디지털 신(新)감시사회 같은 표현들이 점차 빈도 높게 등장하고 디지털 피로감과 중독성에서 탈피하려는 움직임들이 빠르게 가시화되고 있다. 강요된 중독과 노모포비아 디지털 기기의 부작용에서 벗어나 정신적, 육체적 건강을 회복하는 것, 요컨대 디지털 디톡스의 컨셉트는 이제 사회적인 운동 차원으로 발전해 가는 분위기다. 현대인은 디지털 외에도 다방면에서 중독을 강요당하고 있다. 이 때문에 디톡스 화장품, 디톡스 음식, 디톡스 테라피 같은 상업적 문구들이 인기를 얻고 있다. 그 중에서도 특히 많은 불안감을 조성하고 있는 쪽이 디지털기기 분야다. 미국의 스마트폰 소유자 중 80%는 외출시 반드시 기기를 갖고 나간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또 영국인 1천 3백만 명이 노모포비아(NoMoPhobia, no mobile phobia), 즉 이동통신기기의 전원이 소진되거나 기기를 분실할 때 스트레스 증후를 보인다는 조사 결과도 소개됐다. 생존을 위한 반동 디지털 디톡스와 심신건강 회복이 세간의 화두로 대두되면서, 지난 80년대 이후 세를 확장해 오다 경기침체로 주춤했던 스파(spa)와 웰니스(wellness) 산업이 또다시 활력의 모멘텀을 찾고 있다. 미국의 유력 신문 방송들은 미국내 호텔과 리조트들이 디지털 기기를 반납하거나 사용하지 않기로 약속하는 고객에게 숙박료 할인 혜택을 주는 등 디지털 디톡스 패키지 상품을 인기리에 선보이고 있다고 소개하고 있다. 도심의 데이 스파와 호텔, 그리고 오지의 건강 리조트들도 이러한 흐름에 적극 가세하고 있다. 체류형 건강 리조트에서는 단순히 디지털기기와의 격리가 아니라 보다 적극적인 대안 프로그램을 개발해 디지털 디톡스를 위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흥미(fun) 요소를 가미한 뇌체조 놀이, 디톡스 스파 테라피, 하이킹, 요가와 명상, 예술창작, 가족단위 게임, 인간적인 대화 같은 프로그램들이다. 영국 런던 교외 라이프하우스 컨트리 스파 리조트에서는 일명 '블랙베리탁아소'로 불리는, 스마트폰을 따로 맡겨두고 지내는 프로그램을 운영해 주목받고 있다. 또 캐나다 BC주의 에코밸리 랜치 앤 스파에서도 휴대폰과 완전히 떨어진 채 마사지나 승마 세션을 즐기는 고객에게 부가적인 혜택을 주고 있다. 아날로그에 대한 향수 점차 많은 스파와 리조트들이 디지털 기기와의 단절을 전제로 서비스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나아가 심신 활력 회복을 위한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후속 모듈들을 개발해 제공하고 있다. 디지털 디톡스를 간판 사업으로 전개하는 곳도 등장했다. 미국의 <더디지털디톡스>는 디지털 디톡스 휴양 프로그램을 전문적으로 개발해 진행하면서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이곳의 핵심 프로그램은 전자기기의 접속이 곤란한 오지 산간에서 4일 동안 머무르면서 동행자들끼리 각종 오락이나 인간적인 소통 기회를 만끽하게 하는 것이다. 마치 70년대의 보이스카웃 캠핑을 연상케 하는 프로그램이다. 또 일정한 시설을 갖춘 휴양지에 방문해, 마사지, 온욕, 하이킹, 명상, 자연영양식 같은 서비스를 제공받으면서 아날로그식 라이프스타일을 즐기도록 안내하기도 한다. 이 사업체의 모토는 "테크놀로지와 단절하라. 자기 자신과 다시 연결하라. 그리고 심-신-영을 재충전하라"이다. 디지털시대의 웰니스 우리 나라 통계청에서는 2013년 주목받을 7대 ‘블루슈머’ 중 하나로 ‘디톡스가 필요한 사람들’을 꼽았다. 디지털 강국인 우리 나라에서 매우 적절한 통찰이자 시류에 걸맞는 처방이다. 웰니스에 대한 논의도 더욱 활발해지고 있다. 지식경제부는 웰니스 분야를 미래 성장동력산업으로 간주해 전략개발 활동을 주도하고 있다. 특히 IT부문에서 논의가 적극적이다. 물론 디지털 디톡스를 외치는 시대에 디지털이 웰니스 처방을 주도한다는 사실은 아이러니하다. 파괴되어 가는 인간의 삶을 과학이 아닌 인문학과 사회과학의 측면에서 함께 성찰하고 그 대안을 논의하는 균형 감각이 필요해 보인다. 웰니스 라이프스타일을 강조하는 스파와 리조트 산업에서도 하드웨어적인 외형 갖추기나 현혹적인 마케팅 문구 개발에 힘쓰기보다는 소비자들의 욕망 저변에 깔린 본성을 파악하고 이에 논리적으로 대응할 서비스 컨텐츠를 개발해 내는 데 주력하는 일이 시급해 보인다. 디지털 디톡스는 이 시대 인간 사회의 모습을 상징하는 우울한 언어이면서 동시에 생명 회복의 등불일 수 있다. 아울러 관련 산업의 불황을 타개하고 진정한 선진화를 앞당길 실용주의적 논의의 주제일 수도 있다.
    • 오피니언 Opinion
    • 컬럼
    2013-03-13
  • [발행인컬럼] 디지털 위험사회의 디톡스와 웰니스
    최근 미국을 비롯한 구미의 유통 및 서비스 산업계에 새로운 바람이 불고 있다. 일명 디지털 디톡스(digital detox)로 불리는 탈(脫)정보기기 운동 때문이다. 삶의 편의를 위해 인간이 주도한 기술이 오히려 인간의 본성적 삶을 해친다는 각성과 저항은 인류 문명사 속에서 늘 존재했었다. 근세 이후 산업혁명과 대량생산 시대를 거치면서 소외되고 짓밟힌 휴머니즘의 거센 저항은 도처에서 잔혹스런 사태들을 연출했었다. 21세기 정보기술의 발달도 유사한 저항에 부딪히고 있다. 사람들은 정보기기의 편리성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감각적 삶을 옥죄고 마비시키는 암울한 환경에 점차 불안감을 느끼고 있다. 디지털 중독사회, 디지털 위험사회, 디지털 신(新)감시사회 같은 표현들이 점차 빈도 높게 등장하고 디지털 피로감과 중독성에서 탈피하려는 움직임들이 빠르게 가시화되고 있다. 강요된 중독과 노모포비아 디지털 기기의 부작용에서 벗어나 정신적, 육체적 건강을 회복하는 것, 요컨대 디지털 디톡스의 컨셉트는 이제 사회적인 운동 차원으로 발전해 가는 분위기다. 현대인은 디지털 외에도 다방면에서 중독을 강요당하고 있다. 이 때문에 디톡스 화장품, 디톡스 음식, 디톡스 테라피 같은 상업적 문구들이 인기를 얻고 있다. 그 중에서도 특히 많은 불안감을 조성하고 있는 쪽이 디지털기기 분야다. 미국의 스마트폰 소유자 중 80%는 외출시 반드시 기기를 갖고 나간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또 영국인 1천 3백만 명이 노모포비아(NoMoPhobia, no mobile phobia), 즉 이동통신기기의 전원이 소진되거나 기기를 분실할 때 스트레스 증후를 보인다는 조사 결과도 소개됐다. 생존을 위한 반동 디지털 디톡스와 심신건강 회복이 세간의 화두로 대두되면서, 지난 80년대 이후 세를 확장해 오다 경기침체로 주춤했던 스파(spa)와 웰니스(wellness) 산업이 또다시 활력의 모멘텀을 찾고 있다. 미국의 유력 신문 방송들은 미국내 호텔과 리조트들이 디지털 기기를 반납하거나 사용하지 않기로 약속하는 고객에게 숙박료 할인 혜택을 주는 등 디지털 디톡스 패키지 상품을 인기리에 선보이고 있다고 소개하고 있다. 도심의 데이 스파와 호텔, 그리고 오지의 건강 리조트들도 이러한 흐름에 적극 가세하고 있다. 체류형 건강 리조트에서는 단순히 디지털기기와의 격리가 아니라 보다 적극적인 대안 프로그램을 개발해 디지털 디톡스를 위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흥미(fun) 요소를 가미한 뇌체조 놀이, 디톡스 스파 테라피, 하이킹, 요가와 명상, 예술창작, 가족단위 게임, 인간적인 대화 같은 프로그램들이다. 영국 런던 교외 라이프하우스 컨트리 스파 리조트에서는 일명 '블랙베리탁아소'로 불리는, 스마트폰을 따로 맡겨두고 지내는 프로그램을 운영해 주목받고 있다. 또 캐나다 BC주의 에코밸리 랜치 앤 스파에서도 휴대폰과 완전히 떨어진 채 마사지나 승마 세션을 즐기는 고객에게 부가적인 혜택을 주고 있다. 아날로그에 대한 향수 점차 많은 스파와 리조트들이 디지털 기기와의 단절을 전제로 서비스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나아가 심신 활력 회복을 위한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후속 모듈들을 개발해 제공하고 있다. 디지털 디톡스를 간판 사업으로 전개하는 곳도 등장했다. 미국의 <더디지털디톡스>는 디지털 디톡스 휴양 프로그램을 전문적으로 개발해 진행하면서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이곳의 핵심 프로그램은 전자기기의 접속이 곤란한 오지 산간에서 4일 동안 머무르면서 동행자들끼리 각종 오락이나 인간적인 소통 기회를 만끽하게 하는 것이다. 마치 70년대의 보이스카웃 캠핑을 연상케 하는 프로그램이다. 또 일정한 시설을 갖춘 휴양지에 방문해, 마사지, 온욕, 하이킹, 명상, 자연영양식 같은 서비스를 제공받으면서 아날로그식 라이프스타일을 즐기도록 안내하기도 한다. 이 사업체의 모토는 "테크놀로지와 단절하라. 자기 자신과 다시 연결하라. 그리고 심-신-영을 재충전하라"이다. 디지털시대의 웰니스 우리 나라 통계청에서는 2013년 주목받을 7대 ‘블루슈머’ 중 하나로 ‘디톡스가 필요한 사람들’을 꼽았다. 디지털 강국인 우리 나라에서 매우 적절한 통찰이자 시류에 걸맞는 처방이다. 웰니스에 대한 논의도 더욱 활발해지고 있다. 지식경제부는 웰니스 분야를 미래 성장동력산업으로 간주해 전략개발 활동을 주도하고 있다. 특히 IT부문에서 논의가 적극적이다. 물론 디지털 디톡스를 외치는 시대에 디지털이 웰니스 처방을 주도한다는 사실은 아이러니하다. 파괴되어 가는 인간의 삶을 과학이 아닌 인문학과 사회과학의 측면에서 함께 성찰하고 그 대안을 논의하는 균형 감각이 필요해 보인다. 웰니스 라이프스타일을 강조하는 스파와 리조트 산업에서도 하드웨어적인 외형 갖추기나 현혹적인 마케팅 문구 개발에 힘쓰기보다는 소비자들의 욕망 저변에 깔린 본성을 파악하고 이에 논리적으로 대응할 서비스 컨텐츠를 개발해 내는 데 주력하는 일이 시급해 보인다. 디지털 디톡스는 이 시대 인간 사회의 모습을 상징하는 우울한 언어이면서 동시에 생명 회복의 등불일 수 있다. 아울러 관련 산업의 불황을 타개하고 진정한 선진화를 앞당길 실용주의적 논의의 주제일 수도 있다.
    • 오피니언 Opinion
    • 컬럼
    2013-03-13
  • 소비자 현혹하는 '국제' 명칭
    인터넷이 발달하여 세계의 변화무쌍한 변화를 시시각각 확인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IT강국이라 자부하는 우리 나라에서는 세계 어느 곳보다 인터넷 접근이 용이하고, 바깥 세계와의 정보 교환에서 누구보다 유리한 여건에 있다. 하지만 우리 나라의 세계화는 여전히 갈 길이 멀어 보인다. 치열한 삶의 경쟁이 좁은 우물 안에서만 펼쳐지고 있다. 우리의 평균 학력은 세계 어느 나라보다 높다. 하지만 사회적 실용성 측면에서는 문제가 심각하다. 우리 나라 대졸 여성의 취업률은 OECD 국가 중 최하위 수준이다. 그만큼 학력 인플레가 심각하다. 대졸자의 증가로 인해 소비자들의 눈높이는 상대적으로 높아졌다. 제조와 서비스 분야의 생산자들은 이들의 눈높이에 맞추느라 고충이 이만 저만이 아니다. 그러느라 여러 군데서 엇박자 소리들이 들려 온다. 상품이나 서비스에서 이제는 '국제적'이라는 명칭을 쓰지 않으면 명함을 내놓기도 부끄러운 실정이다. 국내에서 열리는 박람회는 많은 경우에 '국제'라는 호칭을 달고 있다. 세미나, 심포지엄, 컨퍼런스 등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한마디로, 폼(?)을 잡아야 소비자를 현혹할 수 있기 때문이다. 1백 명이 모이는 곳에 이웃 중국의 기업 혹은 참가자가 한 명이라도 있으면 거리낌 없이 '국제'가 된다. 교육 서비스 분야에서도 '국제'병이 심각하다. 사설 교육기관에 더해 대학까지 중병에 걸렸다. 상술의 끝이 보이질 않는다. 물론 이러한 곳에 손쉽게 편승하여 신분을 포장하려는 소비자들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구한말이나 해방 직후 이른바 신(新)문물을 앞세워 한 몫 챙기던 전통이 지금도 자랑스럽게 계승되어 오고 있다. 장사하는 사람들은 본인이 파는 것이 무엇이고 사회적으로 어떤 영향을 줄 것인지에는 애당초 관심이 없다. 그것에 대해 잘 알지도, 잘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 그냥 장사만 하면 그만이다. 유교문화가 지배하고 신분질서가 존재하던 이씨 조선 시대에는 폼생폼사가 대세였다. 일부 깨인 사람들이 실사구시를 외쳐댔고, 결국 시대의 흐름은 달라졌다. 어느덧 실용주의가 새로운 지배 이념으로 자리를 잡아 왔다. 하지만, 자본주의가 정착하고 소비자와 공급자들의 게임 논리가 더욱 영악해져 왔음에도 불구하고 구습의 유령은 여전히 우리 사회의 기회주의자들에게 유효한 장사 수단으로 남아 있다. 오늘날 시장 원리가 작동하는 시대에 누군가 '국제'라는 명칭을 달아서 박람회 장사를 하거나, 대학들이 학생들을 모집한다고 해서 문제가 될 것은 없다. 이름에 걸맞게, 명실상부하면 그만이고, 실제로 그렇다면 얼마나 축복할 일일까. 하지만 현실이 그렇지 못한 것이 문제다. 소비자를 현혹하는 가짜들이 너무나 많다. 소비자들이 더욱 많은 깨달음을 가져야 할 것 같다. '국제'라는 타이틀은 단순한 형용사일 뿐이다. 많은 경우에 그것은 진실하지 못한 사례들에, 신생 서비스 산업인 경우들에 너무나 허다하게 남용되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을 한 번 쯤 짚어야 할 것 같다. 악화는 곧잘 양화를 구축한다. 진정성 있는 '국제' 서비스들마저 교묘한 장사꾼들의 현란한 구호들로 인해 소비자집단과 건전한 소통의 기회조차 갖지 못하는 사례들이 많은 현실이 안타깝다. 건강, 웰니스, 스파, 뷰티 등의 산업 분야에서 유독 '국제' 명칭이 많이 쓰이는 것 같다. 정말 명실상부한 국제적 수준의 상품이나 서비스가 시장의 대세가 되는 날이 오기를 학수고대할 뿐이다. < 저작권자 © 웰니스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 오피니언 Opinion
    • 사설
    2013-02-26
  • 소비자 현혹하는 '국제' 명칭
    인터넷이 발달하여 세계의 변화무쌍한 변화를 시시각각 확인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IT강국이라 자부하는 우리 나라에서는 세계 어느 곳보다 인터넷 접근이 용이하고, 바깥 세계와의 정보 교환에서 누구보다 유리한 여건에 있다. 하지만 우리 나라의 세계화는 여전히 갈 길이 멀어 보인다. 치열한 삶의 경쟁이 좁은 우물 안에서만 펼쳐지고 있다. 우리의 평균 학력은 세계 어느 나라보다 높다. 하지만 사회적 실용성 측면에서는 문제가 심각하다. 우리 나라 대졸 여성의 취업률은 OECD 국가 중 최하위 수준이다. 그만큼 학력 인플레가 심각하다. 대졸자의 증가로 인해 소비자들의 눈높이는 상대적으로 높아졌다. 제조와 서비스 분야의 생산자들은 이들의 눈높이에 맞추느라 고충이 이만 저만이 아니다. 그러느라 여러 군데서 엇박자 소리들이 들려 온다. 상품이나 서비스에서 이제는 '국제적'이라는 명칭을 쓰지 않으면 명함을 내놓기도 부끄러운 실정이다. 국내에서 열리는 박람회는 많은 경우에 '국제'라는 호칭을 달고 있다. 세미나, 심포지엄, 컨퍼런스 등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한마디로, 폼(?)을 잡아야 소비자를 현혹할 수 있기 때문이다. 1백 명이 모이는 곳에 이웃 중국의 기업 혹은 참가자가 한 명이라도 있으면 거리낌 없이 '국제'가 된다. 교육 서비스 분야에서도 '국제'병이 심각하다. 사설 교육기관에 더해 대학까지 중병에 걸렸다. 상술의 끝이 보이질 않는다. 물론 이러한 곳에 손쉽게 편승하여 신분을 포장하려는 소비자들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구한말이나 해방 직후 이른바 신(新)문물을 앞세워 한 몫 챙기던 전통이 지금도 자랑스럽게 계승되어 오고 있다. 장사하는 사람들은 본인이 파는 것이 무엇이고 사회적으로 어떤 영향을 줄 것인지에는 애당초 관심이 없다. 그것에 대해 잘 알지도, 잘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 그냥 장사만 하면 그만이다. 유교문화가 지배하고 신분질서가 존재하던 이씨 조선 시대에는 폼생폼사가 대세였다. 일부 깨인 사람들이 실사구시를 외쳐댔고, 결국 시대의 흐름은 달라졌다. 어느덧 실용주의가 새로운 지배 이념으로 자리를 잡아 왔다. 하지만, 자본주의가 정착하고 소비자와 공급자들의 게임 논리가 더욱 영악해져 왔음에도 불구하고 구습의 유령은 여전히 우리 사회의 기회주의자들에게 유효한 장사 수단으로 남아 있다. 오늘날 시장 원리가 작동하는 시대에 누군가 '국제'라는 명칭을 달아서 박람회 장사를 하거나, 대학들이 학생들을 모집한다고 해서 문제가 될 것은 없다. 이름에 걸맞게, 명실상부하면 그만이고, 실제로 그렇다면 얼마나 축복할 일일까. 하지만 현실이 그렇지 못한 것이 문제다. 소비자를 현혹하는 가짜들이 너무나 많다. 소비자들이 더욱 많은 깨달음을 가져야 할 것 같다. '국제'라는 타이틀은 단순한 형용사일 뿐이다. 많은 경우에 그것은 진실하지 못한 사례들에, 신생 서비스 산업인 경우들에 너무나 허다하게 남용되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을 한 번 쯤 짚어야 할 것 같다. 악화는 곧잘 양화를 구축한다. 진정성 있는 '국제' 서비스들마저 교묘한 장사꾼들의 현란한 구호들로 인해 소비자집단과 건전한 소통의 기회조차 갖지 못하는 사례들이 많은 현실이 안타깝다. 건강, 웰니스, 스파, 뷰티 등의 산업 분야에서 유독 '국제' 명칭이 많이 쓰이는 것 같다. 정말 명실상부한 국제적 수준의 상품이나 서비스가 시장의 대세가 되는 날이 오기를 학수고대할 뿐이다. < 저작권자 © 웰니스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 오피니언 Opinion
    • 사설
    2013-02-26
  • 해양요법, 딸라소테라피에 대한 오해
    유럽에서 생겨난 딸라소테라피란 용어가 몇 년 전부터 우리 나라에서도 유행이다. 그리스 어원으로 ‘바다 혹은 해양’을 뜻하는 딸라소(thalasso-)에 ‘치료 혹은 치유’를 뜻하는 테라피(therapy)가 합성되어 생겨난 말이다. 바다는 흔히 생명의 근원으로 불리고, 여러 측면에서 인류의 건강을 지켜 주는 자원의 보고로 알려져 있다. 인류의 건강과 관련해서 옛 그리스 의학자들이 바다 자원의 중요성을 강조한 바 있고, 그러한 전통은 대서양과 지중해 연안 유럽 국가들을 중심으로 오늘날까지 내려오고 있다. 해양 자원은 유럽 뿐만 아니라 지구촌 어디서든 그 소중함을 인정받고 있다. 우리 나라에서는 몇 년 전부터 모 지자체와 산하 기관이 중심이 되어 딸라소테라피 연구와 실용화를 국책 사업으로 진행해 오고 있으나 애당초 설정했던 거창한 목표에는 도달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시중에서는 공해와 스트레스에 지친 현대인들을 대상으로 스파, 미용, 휴식, 건강 서비스 관련 산업 분야에서 해양 자원을 활용한 화장품, 먹거리, 기기류 등이 유통되고 있다. 천연 수단에 대한 소비자들의 신뢰와 기대 때문에 다양한 공급 아이템들이 등장하고 있다. 하지만 갖가지 요란한 구호들을 이면을 보면, 많은 경우에 그렇듯이, 아쉬운 점들이 있다. 딸라소테라피의 경우, 그 근본 개념에 대한 오해가 시장을 엉뚱한 방향으로 몰고 가고 있다. 바다에서 가져온 자원을 이용하는 모든 수단이나 방법들이 딸라소테라피로 통칭될 수는 없다. 딸라소테라피는 엄격한 필요충분 조건(해당 지역의 기후, 햇볕, 공기, 해조류, 해양 미네랄, 관련 의료인 등 포함)을 갖춘 환경에서 시행되는 것이며, 그 중 일부 요소만으로 목적에 도달할 수는 없는 일이다. 도심의 어느 실내 공간에서 딸라소테라피를 행한다는 것은 논리상 어불성설이다. 실제로 유럽에서는 딸라소테라피의 환경과 시술 상의 엄격성을 매우 강조하고, 유사한 치유 행위나 몇몇 공업화된 제품(기기나 화장품류)만으로 딸라소테라피를 시행하는 엉터리 사례들에 소비자들이 현혹되지 말 것을 경계하고 있다. 인류의 오랜 임상 역사와 현대의 의학연구를 통해 정립된 딸라소테라피라는 용어가 너무나 쉽사리 상업적인 수단으로 오용되는 현실이 언제까지 갈 수는 없다. 오늘날의 소비자들은 하루게 다르게 다양하고 많은 지식 정보에 접하고 있다. 소비자들의 눈높이마저 따라가지 못하는 수준의 프로젝트나 민간 비즈니스는 에너지 낭비일 수밖에 없다.
    • 오피니언 Opinion
    • 기자수첩
    2013-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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